워드프레스 블로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구글 PageSpeed 점수는 붉은 색을 표시하고 있었고, 개발자를 고용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AI에게 물었다.
AI는 친절했다. 단계마다 설명이 붙었고, 이유도 그럴듯했다. 나는 하나씩 따라했다. 마지막 단계를 적용하고 새로고침을 눌렀을 때, 화면은 하얬다. 워드프레스의 유명한 “하얀 죽음(White Screen of Death)”이었다. 에러 메시지조차 없었다.
AI에게 따졌다. 왜 이런 걸 알려줬냐고.
AI는 담담했다. 내 환경을 몰랐다고 했다. 내가 준 정보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의아했다 나는. 내 환경을 최대한 성실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과 AI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간극이 있었다. 양쪽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화면은 하얬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도 매일 이렇게 일하고 있잖아.
의뢰인의 말을 듣고 문서를 만든다. 하지만 내가 받는 정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의뢰인도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그러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기억하는 것, 말할 수 있는 것만 내게 온다. 나는 그 조각들로 최선의 답을 만들지만,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끝내 알 수 없다. 그 문서가 어떤 결정적인 상황에서 다시금 꺼내지고, 어떻게 해석될지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사실 이건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분업이 고도화될수록 각자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일한다. 설계자는 건물이 지어지는 현장을 매일 보지 않고, 의사는 처방전을 쓰고 나면 그 약이 환자의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직접 지켜보지 못한다. 누구도 자신의 결과물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순간을 온전히 목격하지 못한다. 그런데 세상은 굴러간다.
불완전한 정보 위에서 내린 판단들이 쌓이면, 마찰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계약서의 조항이 예상과 다르게 읽히고, 서로 다른 기억이 충돌하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공백이 분쟁이 된다. 이건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다. 불완전한 정보로 만들어진 세계가 불완전하게 맞물린 결과다.
그리고 그 마찰을 해결하러 오는 사람도, 또 불완전한 정보를 손에 쥔 법조인이다.
그들은 양쪽의 말을 듣고, 기록을 읽고, 현장을 재구성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누락된 맥락이 있고, 기억은 제각각이고, 진실은 온전히 복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판단을 내리는 건, 결국 그 자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은 원래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정보가 불완전한 결과를 낳고, 그 결과로 생긴 균열을 또 다른 불완전한 판단이 봉합한다. 완벽한 코드는 없고, 완벽한 계약서도 없고, 완벽한 판결도 없다. 그 불완전함 사이의 틈을 메우는 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해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