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른 권의 열쇠 –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

여느 날과 다름 없었던 어느 퇴근 길에 동료 변호사가 대뜸 ‘요즘 책 좀 읽냐’라면서 건네 준 책. ‘서른 권의 열쇠’에 대해 소개해 본다.

서른 권의 열쇠

들어가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 블로그를 하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이다. 글보다는 사진, 사진보다는 영상이 훨씬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보다도 훨씬 더 시대에 뒤떨어진 동료가 있었다.

어느 퇴근길에 대뜸 “너, 요즘 책 좀 읽냐”라면서, 자기 방으로 가자는 그 형. 자신이 책을 냈다면서 건네준 책이 바로 ‘서른 권의 열쇠’이다.

아직도 이런 구식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아 흔쾌히 서평까지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이 글은 내 생애 최초로 ‘내돈내산’이 아닌, 어느 누구의 요청도 없었지만, 형식상 ‘협찬’에 의해 리뷰하는 글이 된 셈이라는 점을 서두에 미리 밝힌다.

왜 ‘서른 권의 열쇠’인가

변호사인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하면 으레 법학서적 등을 연상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읽히는 수필로 작성되었다. 생애전환기 검진을 앞둔 저자가 기성세대가 되었음을 깨달으며, 문득 2~30대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책 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르는 청춘들을 위하여, 저자가 고민하던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을 제공하였던 책들을, 그의 개인적인 일화와 함께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책에 소개된 서른 권은 적다고는 볼 수는 없지만, 해당 책들은 인문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추천 도서 만을 추린 셈이다. 특히 뉴욕 유학 당시 2,3 주에 한 번 씩 뉴욕 필 공연을 다녀올 정도로 예술에 열정적인 저자의 취향을 반영하여, 책의 1/3 이상은 음악과 미술, 문학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은 문체로 작성되었고, 책에 소개된 법률이나 회계 등 매우 일부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전문성을 갖추지는 않은 저자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점이 강점으로 작용한다. 관련 분야를 깊이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의 입장에서 핵심 내용을 적절한 난이도의 설명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한 순서대로 책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독자가 관심이 있는 부분부터 먼저 발췌하여 읽더라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게 각 장은 독립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근본적인 화두

책에서는 저자가 고민하였던 여러 주제들이 변형되어 나오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화두를 꼽는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은 점은, 관련 분야를 나누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저자가 책의 별도의 장으로서 ‘인간’이라는 주제를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완성된 답이 아닌, ‘조각난 형태의 미완의 답’들을 책에 소개된 서른 권의 서적을 통해 얻는 과정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즉, 저자는 그가 얻은 답은 잠정적, 예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개별 독자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동일한 원문을 읽더라도 각각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저자가 얻은 답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위대한 개츠비 관련 서술에서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에 대한 답과 관련하여, 저자가 20대 초반일 때, 그 후 십 여년의 시간이 흘러 30대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리고 40대가 된 현재 다시 읽었을 때, 각각 다른 답을 얻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어떠한 해석이 더 올바른 답이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그와 같이 사유한 이유에 대해서만 기술하고 있다. 또한, 책 말미에서 저자는 자신의 책 역시 독자에 의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모순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고려해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에 대한 보편적인 답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대체적으로 아름다움이나 정의를 추구하지만, 그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실례들도 얼마든지 발견된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답을 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행위의 주체가 되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없이는, 그와 관련된 논의의 출발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어떠한 시대라도 불문하고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실정법 해석을 주된 방법론으로 하는 법학에 있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주제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어, 해당 논의의 가치는 간과되기 쉽다. 그러나, 실무상으로도 개별 법조문의 의미가 불명확하지만 어떠한 특정 결론이 보다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가 많은데, 이 때 합리적이라 함은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그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와 같은 가상의 인물을 상정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실정법 해석에 있어서도 해당 이슈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가 맨 마지막 장에 굳이 단행본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헌법을 서른 권 중 하나로서 소개한 의도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한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나 평등 등의 불확정한 개념의 해석과 관련하여서는, 인간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동료 변호사인 저자가 던진 근본적인 화두에 공감이 되어, 그 동안 ‘인간’에 대하여 심도 있게 이해해 보려는 노력 없이, 너무 법 조문의 문언에만 갇힌 닫힌 사고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한 번 뒤돌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책에 정성스럽게 소개된 여러 서적들의 원문을 차분히 한 번 살펴보고 싶어졌다.

마치며

저자는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위치한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나, 도쿄의 시청건물 같은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도시의 경계와 높이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는데, 낯선 여행지에서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서 지상으로 내려오면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도시가 올라가기 전과는 딴판으로 한 걸음 돌아볼 여유를 갖게 한다면서, 좋은 책의 역할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전체적인 구도를 확인하는 경험은, 남북을 맞추어 실제 세상과의 정렬을 요하는 조감도나 지도와는 다르게 “경험적”으로 세상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갖는다. 각종 스마트폰 지도와 네비게이션이 보편화 된 현재에도 여전히 유명한 도시의 전망대들에 인파가 빼곡히 몰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읽기 전에는, 단순히 미지의 세계를 그린 평면적인 조감도나 지도에 불과하겠지만, 실제로 읽는 과정에서, 마치 전망대와 같이 구체적인 세상을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독자들의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서른 권의 열쇠’는 저자가 후배 세대들과 그와 같은 특별한 경험을 나누기 위하여 마련한 마치 선물 같은 책이다. 저자의 다음 책도 기대된다.

참고사이트


김민식(Kevin)

변호사

김민식 변호사

금융과 부동산 관련 법률을 주로 자문하는 10년차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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