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성찰하는 사람은 왜 줄어들고 있을까
요즘 ‘왜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세상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이 많은데,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들처럼 소비되는 일이 많아졌다.
가볍고 빠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무거운 질문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깊이 있는 콘텐츠의 제작 난이도
깊이 있는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획자, 창작자, 학자, 법률가 등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그건 일종의 ‘사고의 체력’과 같다.
문제의 배경과 맥락, 역사, 문화, 제도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그것을 납득 가능한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콘텐츠는 시간이 많이 들고, 생산성이 낮다.
플랫폼 알고리즘도 이런 과정을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역할이 사라져도 될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과정을 건너뛴 채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판단하고, 소비하고, 폐기한다.
AI는 생각하는가?
최근 AI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판단도 맡길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AI는 결국 인간의 판단을 학습하고, 확률적으로 답을 도출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 판단을 근거로 해도 괜찮을까?’라는 비판적 시선을 가지지 않는다.
만약 노예제가 합법이던 시대에 AI판사가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의가 바뀌는 사회에서, ‘기존의 답’을 모방하는 시스템은 영원히 과거에 머무르게 된다.
법의 해석이 바뀌어야 할 때
이 점은 법을 해석하는 데서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어떤 주제는 명확한 법 조문이 없고, 사회적 합의도 진행 중이다.
이를테면 최근 내가 블로그에 소개한 동성 동반자에 대한 문제처럼 말이다.
법이란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반영하는 해석의 체계다.
때로는 ‘조문이 없으니 불가’라는 입장을 넘어서야 할 때도 있다.
그건 개인적인 선호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된 사회를 어떻게 법이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 너머에서, 무엇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가를 본다.
우리는 지금 그 사고의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우리는 자극적인 콘텐츠, 단순한 답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답이 뭔가요?’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생각 없는 시대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참고 글 : 동성 동반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여부
변호사
금융과 부동산 관련 법률을 주로 자문하는 10년차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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