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저평가 현상,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하여 제시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governance) 개선 방안에 관하여 차례로 연재하기로 한다. 그 첫 번째 주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이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에 상충이 있는 신주발행, 합병, 분할, 지주사전환 등 거래에 있어,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목차
이사의 충실의무 내용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의하여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의무가 있다(상법 제382조의3). 이러한 충실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그 지위를 개인의 이익을 위하거나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이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법 개별규정에서는 이사가 부담하는 구체적인 충실의무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상법 제382조의3의 규정은 그에 대한 일반조항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상법은 충실의무를 구체화한 규정으로서 이사의 경업금지(상법 제397조),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제397조의2), 이사등과 회사간의 거래(제398조)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위 각 개별규정은 특정한 위반행위만을 규제할 뿐이고, 사전에 모든 충실의무 위반행위를 예정하여 금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위 개별 규정으로 규율되지 않는 이사와 회사의 이익충돌상황에 일반조항으로서 보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조항을 별도로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행위가 있을 경우, 개별조항이 있는 경우 해당 조항에 따르고, 그에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거나, 이사 해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앞서 본 현행 상법 제 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상 이사가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대상은 ‘회사’임이 명시되어 있으나, ‘주주’에 대하여는 별도의 규정이 없으므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인정될 수 있을지 여부는 해석상의 문제로 남아 있다.
판례 및 지배적 견해 :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부정
대법원은, 이사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즉, 회사 지배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전환사채의 발행이 이사의 임무위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이사가 주식회사의 지배권을 기존 주주의 의사에 반하여 제3자에게 이전하는 것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일 뿐 지배권의 객체인 주식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데, 주식회사의 이사는 주식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주식회사와 별개인 주주들에 대한 관계에서 직접 그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 바 있다(대법원 2009. 5. 29. 선고 2007도4949 전원합의체 판결 )
또한, 대법원은 “신주발행은 주식회사의 자본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신주발행과 관련한 대표이사의 업무는 회사의 사무일 뿐이므로 신주발행에 있어서 대표이사가 납입된 주금을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관리·보관하는 업무 역시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에 기한 것으로서 회사의 사무에 속하는 것이고, 신주발행에 있어서 대표이사가 일반 주주들에 대하여 그들의 신주인수권과 기존 주식의 가치를 보존하는 임무를 대행한다거나 주주의 재산보전 행위에 협력하는 자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는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납입을 가장하는 방법에 의하여 주금이 납입된 경우 회사의 재산에 대한 지분가치로서의 기존 주식의 가치가 감소하게 될 수는 있으나, 이는 가장납입에 의하여 회사의 실질적 자본의 감소가 초래됨에 따른 것으로서 업무상배임죄에서의 재산상 손해에 해당된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신주발행에 있어서 대표이사가 납입의 이행을 가장한 경우에는 상법 제628조 제1항에 의한 가장납입죄가 성립하는 이외에 따로 기존 주주에 대한 업무상배임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4. 5. 13. 선고 2002도7340 판결)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견해 및 실무도 위 대법원 판례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비판적 견해 :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긍정
위와 같은 판례 및 지배적 견해에 대하여, 총 주주의 이익(=회사이익)이 증가할지라도 이를 지배주주가 대부분 가져가는 경우에는, 일반주주의 부는 저하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판례는 충실의무의 범위를 축소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어떠한 보호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 문제되는 일련의 물적분할의 경우 회사의 이익과 무관하게 일반주주의 부가 저하될 가능성이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즉, 회사가 수익성이 좋은 신규 사업부를 물적분할을 통해 자회사로 떼어낸 뒤에, 해당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경우, 두 회사를 합쳐서 보면 신규 자금조달을 통해 종전보다 자산규모가 커지고 신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 소요를 충당함으로써 전체 기업가치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일반주주의 입장에서는 신규 사업에 대한 주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분할 후 자회사가 발행하는 신주가 일반 주주들에게 배정되는 것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종전 보다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지배주주는 수익성이 좋은 사업부를 자회사로 떼어냄으로써, 모회사 대표이사를 통해 다른 주주들을 배제하고 단독 지배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지배력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그러면서도 대규모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실증적으로도 물적분할 후 모회사와 자회사를 동시 상장하는 경우,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법원과 주류적 학설의 태도에 의하면, 이사에게는 주주들의 비례적이익을 보호할 구체적인 의무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 손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위와 같은 물적 분할은 적법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대법원 2004. 5. 13. 선고 2002도7340 판결의 원심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적어도 신주발행과 같은 회사의 자본거래행위에 있어서는 이사는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주식회사의 이사는, 주주와 회사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을지라도, 신주발행이나 합병비율 결정과 같은 자본거래에 있어서는 이사가 전체 주주의 비례적 주식가치를 좌우하는 회사법적 권능을 행사하는데, 타인의 재산권에 대한 실질적인 처분권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그 타인에 대하여 재산을 보호해야 할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해석은 상당히 어색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부담시키는 근거를 타인의 재산에 대한 재량적 처분권(discretionary control)을 가진다는 점에서 찾는바, 우리 법 해석상 그와 동일한 논리로 이사와 전체 주주 사이에는 (법정)대리 내지 위임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임 관계가 성립된다면, 이사는 주주에 대하여 민법 제681조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내지 충실 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명시하는 법안에 대한 검토(이상훈, 2022)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 – 입법적 해결 필요
위와 같이, 현행법 해석상으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와 반대되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이사에게 해당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입법적 해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하여, 2022년 3월 22일 국회의원 12인의 입법안 발의로(이용우 의원의 대표발의) 상법 제382조의3에 이사는 회사 뿐만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추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상법 일부개정안이 제안되었다.
해당 법률안이 통과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어려우나, 그와 같이 상법이 개정된다면 회사의 신주 발행, 합병, 분할, 지주사 전환 등의 자본거래 사안에 있어 지배주주측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기존 판례의 법리에 따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였던 일반 주주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일반적으로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관한 보호의무를 설정하는 조항을 둠으로써, 사안별로 일반 주주보호를 위한 특칙만을 신설하는 방식에 비해, 입법 당시 예상하지 못하였던 사안들에 대하여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개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탈법적인 행위(아래 관련 포스팅 참고)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 포스팅 : 감사위원회 및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
거래 현실에서 지배주주가 보유한 1주의 가치와 일반주주가 보유한 1주의 가치가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적어도 법적/제도적인 관점에서는 그와 같은 차등이 발생하지 않게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주주가치의 형성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이사회의 영향이 결정적인 점에 비추어, 주주평등의 원칙의 제도적 구현을 위하여는 이사들에게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도록 하는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행 대법원 판례의 태도와 같이, 위와 같은 내용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지 아니하는 상황에서는, 지배주주가 보유한 주식과 일반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비록 동일한 명칭을 사용함에도, 법적으로 그 취급이 다른 별개의 상품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규범적으로’ 모두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회사법상 근간을 이루는 대전제인 ‘주주평등의 원칙’의 중대한 훼손을 가져오는 해석이라는 점에서, 만일 입법적 해결이 없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판례 변경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해석된다.
관련 포스팅 : 주주평등의 원칙 및 차등의결권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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