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합병비율의 불합리성 및 대안

국내 증시의 저평가 현상,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하여 제시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governance) 개선 방안에 관하여 차례로 연재하기로 한다. 그 두 번째 주제는 ‘법정 합병비율의 불합리성’이다.

계열사간 합병에 있어, 현행 자본시장법에 정하여져 있는 시가 기준의 합병비율 조건을 적용하게 되면, 기업집단의 지배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적으로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해당 문제점과 그 대안에 관하여 논한다.

현행 법정 합병비율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간의 합병의 경우 거래소 시가를 기준으로 하여 합병비율을 직접 정하고 있다. 즉, 합병을 위한 이사회 결의일 또는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선 날을 기준일로하여, (i) 최근 1개월간 평균종가, (ii)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iii)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하여 계산한 다음, 계열회사간 합병의 경우 10%, 비계열회사간 합병의 경우 30% 범위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여 합병가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그 합병가액의 비율이 법정 합병비율이 된다.

상장법인간의 합병이 아니더라도,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의 합병의 경우에는, 상장법인의 합병가액은 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산정되고(단, 시가총액이 자산총액보다 낮은 경우 자산 총액 선택 가능), 비상장법인의 합병가액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가한 가액으로 산정된다.(자본시장법 제165조의4 및 동법 시행령 제176조의5 참고)

한편, 금융당국의 규제 실무상 자본시장법상 산식에 위반되는 증권신고서 접수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실제 위 산식은 합병신주가 발행되는 상장법인의 합병에 있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문제점 및 대안

문제점

위와 같이 합병비율을 법이 정한 산식으로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객관적 시장가격이 없는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합병가액 평가에 있어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어, 법정 합병비율제의 주요 장점인 명확성 및 예측가능성이 유지될 수 없다.
  •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거래소 시가는 합병비율을 산정함에 있어 일응의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으나, 상호 특수관계가 없는 상장회사 간의 자유로운 협의를 통해 정한 합병비율을 법 규정을 들어 제한하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이며, 시장경제질서의 일반 원리에도 반한다.
  • 상장회사간 합병 중 계열회사 사이의 합병은 지배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병이 이루어 질 수 있어 규제의 필요성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그와 같은 합병이 예상되는 경우 설령 지배주주의 부당한 영향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평가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상태에서 시가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강제하는 경우, 합병대상이 된 상대방회사의 주주들이 손해를 입게 된다.

현실에서 문제되는 유형의 합병은 계열회사간 합병으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시가가 정확한 기업가치를 반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으로도 대주주로 하여금 그의 이해에 따라 특정 계열회사의 주가를 띄우거나 억누르는 행위를 할 유인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현행 자본시장법이 정한 기준에 따른 합병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제도 개선 방안

간접규제 방식 도입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률적인 법정 합병비율 규정을 두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하므로, 해당 비율을 직접 법률로 규정하기보다는, 공정가액에 의해 계산한다는 원칙만을 두되, 합병비율 결정 절차나 과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입법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미국 델라웨어 법원의 해석과 같이, 실질적인 독립성이 인정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합병조건을 독립적으로 결정한 경우, 향후 합병조건의 불공정성 여부가 다투어지는 경우에 법원이 공정성에 대한 완화된 사법적 심사를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시 공정한 가격 결정

합병에 찬성하지 않는 주주의 경우에는 현행법상 주식매수청구권이 인정된다. 이와 관련한 주식매수가격은, 상장법인의 경우 해당 금액은 원칙적으로 회사와 반대주주 사이에 협의에 의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경우의 매수가격은 시가 기준으로 산정한 금액에 의하고, 당사자들이 그 가격에도 반대하는 경우 법원에 의하여 결정한 금액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자본시장법 제165조의5 제3항).

대법원은, 해당 조항의 해석이 문제된 사안으로, 삼성그룹의 계열회사인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과 관련하여 일부 주주가 해당 합병을 반대하여 주식매수를 청구하였으나, 주식매수가격에 대해 삼성물산과 합의가 성사되지 않아 법원에 주식매수가격의 결정을 청구한 사안에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은 상장회사의 합병시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의 전일을 기준으로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합병이 공시되기 이전부터 다수의 금융투자업자들이 특정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상장회사 사이의 합병 및 그로 인해 주가변동 가능성을 언급한 조사분석자료를 작성함에 따라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 전일의 시장주가가 합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법원은 합병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다른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매수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대법원 2022. 4. 14.자 2016마5394 등 결정).

해당 결정은, 합병반대에 따른 주식매수가격은 공정한 가액으로 신중하게 산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여전히 주식매수가격의 결정을 기본적으로 시가에 의존하여 산정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합병가액과 관련하여 위에 제시한 대안과 같이, 독립적 제3자에 의해 산정된 공정가격을 기준으로 주식매수가격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반대주주의 권리보호를 보다 충실하게 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

불공정한 합병조건에 따른 합병이 이루어져 재산상 손해를 입은 주주로 하여금, 해당 회사의 주주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존 판례 법리에 의하면, 그와 같은 청구는 인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므로, 입법적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한 부분으로 보인다.

물론, 이사의 주주의 충실의무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소송에서 손해액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안 소송 제기 전 보전처분 단계에서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산정함으로써 이사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하는 등 사전적으로 권리 침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이며, 그 외에도 이사의 책임을 전반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일반 주주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해당 개정입법은 그와 같은 관점에서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포스팅 :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참고 논문 : 합병비율의 불공정성과 소수주주 보호 – 유기적 제도설계를 향하여 (노혁준, 2015)


김민식(Kevin)

변호사

김민식 변호사

금융과 부동산 관련 법률을 주로 자문하는 10년차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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