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뢰의 침식과 미래 전망의 위축: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

현대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초저출산 현상과 더불어, 구성원들,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만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단기주의적 성향이라는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심리적 안정감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활력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 근저에 ‘미래 전망의 심리적 위축(psychological contraction of future outlook)’, 즉 ‘단축된 미래 감각’이 존재하며, 이는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 자본(social trust capital)’ 형성이 미비했거나, 심지어 침식된 결과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과거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이 최우선시되었고, 그 결과 사회적 연대와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이 상대적으로 간과되었을 가능성을 탐색적으로 논의한다.

사회적 신뢰 부재

사회적 신뢰와 심리적 시간 전망의 이론적 연관성

사회적 신뢰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된 규범과 제도 하에서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고 협력할 것이라는 일반화된 기대를 의미하며, 대인 신뢰와 제도적 신뢰를 포괄하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요소이다.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사회적 거래 비용을 낮추며, 구성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미래 지향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심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서도 신뢰가 전제될 때 장기적 효용 극대화가 가능하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반면, 사회적 신뢰가 결여되거나 붕괴될 경우, 개인은 미래의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심리적 시간 전망(psychological time horizon)의 위축, 즉 ‘단축된 미래 감각(Sense of Foreshortened Future)’으로 이어진다. 트라우마, 특히 신뢰의 배반과 관련된 사회적 트라우마는 개인이 세상이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곳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을 상실하게 만들어, 미래를 계획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참고 논문 : East, K., & Allerton, M. (2014). What is a ‘sense of foreshortened future?’ A phenomenological study of trauma, trust, and time. PubMed Central (PMC4166378).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에서의 사회적 신뢰 자본 형성 미비

과거에는 덜 부유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발전이라는 명목하에 효율성과 결과만을 추구하면서 그 믿음이 점차 붕괴되어 온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은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압축성장(compressed growth)’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 특히 신뢰의 형성은 부차적인 과제로 인식되거나 때로는 성장의 걸림돌로 여겨지기도 했다.

  • 효율성 우선주의와 절차적 공정성 경시: ‘빨리빨리’ 문화와 가시적 성과 중심의 발전 전략은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의 절차적 공정성, 투명성,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책 수용성을 낮추고 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야기하여 제도적 신뢰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 재벌 중심 경제구조와 제도적 신뢰의 약화: 소수 재벌 대기업 중심의 자원 배분과 성장 전략은 초기 자본 축적과 산업화에는 기여했지만, 경제력 집중,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그리고 정경유착의 폐해를 낳았다. 이러한 관행은 법과 제도가 모든 경제 주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공정 경쟁에 대한 신뢰와 사법 및 규제 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신뢰를 저해했다.
  • 권위주의적 통치와 시민 참여의 제약: 압축성장기는 상당 기간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와 맞물려 진행되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 도출보다는 하향식 정책 집행이 주를 이루었고, 이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건강한 신뢰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민주적 기제의 미성숙은 사회적 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요인들은 상호작용하며 한국 사회 내 수평적·수직적 신뢰 자본의 축적을 저해했다. 과도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분위기는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관계의 도구화를 심화시켜 대인 신뢰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래 전망 위축의 다차원적 발현과 사회적 귀결

신뢰 자본의 침식과 그로 인한 미래 전망의 위축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 투자 행태의 단기화 및 투기 성향 증가: 장기적인 가치 성장보다는 단기적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투기적 성향이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 시장에서 관찰된다. 이는 미래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낮은 신뢰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건전한 자본 형성과 생산적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
  • 정치적 의사결정의 근시안성 및 포퓰리즘적 경향: 장기적인 국가 비전이나 미래세대의 부담을 고려한 정책보다는 즉각적인 지지를 얻기 위한 단기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우선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 현재 중심적 소비문화 및 개인주의 심화: “욜로(YOLO)”, “소확행” 등 현재의 만족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현재의 경험과 즉각적인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성향은 개인의 삶의 방식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 패턴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또한 장기적인 관계 형성이나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헌신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초저출산 심화의 핵심 기제로서의 작용: 출산과 양육은 대표적인 장기적 투자이자 헌신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사회적 신뢰가 낮고 미래가 불안정하며 예측 불가능하다고 인식될 때, 청년 세대는 이러한 장기적인 약속을 하는 데 극도의 주저함을 느끼게 된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안정성,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신뢰성, 그리고 자녀가 살아갈 미래 사회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출산은 합리적 선택으로 여겨지기 어렵다. 이는 ‘단축된 미래 감각’이 저출산 문제를 심화시키는 핵심적인 사회심리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대 간 미래 인식 격차와 사회 통합의 과제

압축성장을 경험하며 “노력하면 미래는 나아진다”는 인식을 내재화한 베이비붐 세대와는 달리, 현재의 청년 세대는 저성장, 고용 불안, 자산 가격 급등, 그리고 심화된 경쟁 속에서 미래에 대한 비관론과 불안감을 더 크게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 미래 인식의 현격한 차이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결론 및 제언: 신뢰 회복을 통한 지속 가능한 미래 설계

한국 사회의 압축성장은 분명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취를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 자본 형성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미래 전망의 위축이라는 심각한 사회심리적 비용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 사회적 활력 저하, 단기주의 팽배 등 다양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과 국민적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경제적 지표 개선을 넘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모든 세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국가적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과제들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 제도적 투명성 및 책임성 강화: 정부, 시장, 법치 등 사회 핵심 제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및 사회 이동성 확대: 노력하면 정당한 보상을 받고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회복시켜야 한다.
  • 포용적 사회 안전망 확충: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개인의 불안을 완화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지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 숙의 민주주의 강화 및 시민 참여 확대: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소통과 참여를 확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정책의 수용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신뢰는 예측 가능하고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이다. 신뢰 자본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를 통해 ‘단축된 미래’를 극복하고, 모든 세대가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민식(Kevin)

변호사

김민식 변호사

금융과 부동산 관련 법률을 주로 자문하는 10년차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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