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교향곡 104번 ‘런던’이 남긴 설계도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 서울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나에게, 처음 마주한 캘리포니아의 풍경은 낯선 해방감이었다.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도 다운타운은 차가 막히고 제법 복잡하다. 하지만 서울의 밀도에 익숙한 몸으로는, 그것조차 여유롭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미국의 당연한 ‘기본값’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에 도착하는 순간, 그 섣부른 짐작은 기분 좋게 무너졌다.
뉴욕은 압도적인 혼돈의 도시였다. 마천루 사이를 메운 노란 택시들의 경적, 누군가에게 쫓기듯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익숙한 서울의 바쁨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그 복잡함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나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진 밤의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그곳에서 관람한 <디어 에반 핸슨>의 터질 듯한 감정선과 <라이언 킹> 오프닝이 선사한 거대한 스케일은 기묘한 깨달음을 주었다. 낮 동안 거리를 가득 채웠던 뉴욕의 소음은 낭비되는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거대한 예술적 에너지로 분출하기 위해 끓어오르는 용광로의 온도였던 것이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거대 메가시티에 단련된 ‘서울 출신’인 나조차 뉴욕이라는 용광로 앞에서 숨이 턱 막혔는데, 그렇다면 230년 전 똑같은 충격을 받았을 한 노(老) 음악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Contents
설계도가 없던 시대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시골 영지에서 30년 넘게 귀족의 하인으로 살았던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 오케스트라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하이든 이전의 오케스트라는 한마디로 ‘규격 없는 앙상블’이었다. 악단마다 보유한 악기가 제각각이었고, 귀족이 어떤 악기를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그날의 편성이 결정되었다.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는 독립적인 선율을 맡기보다 현악기의 소리를 보태는 역할에 머물렀고,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화음을 즉흥으로 채우는 구조였다. 지휘자도 없었다. 악장이 바이올린을 켜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1740년대부터 유럽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독일의 작은 도시 만하임의 궁정 악단이 오케스트라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소리를 키우고 줄이는 다이내믹스 기술을 개발하며 유럽을 놀라게 한 것이다. “만하임을 들어봐야 오케스트라를 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런던에서는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가 입장권을 팔고 대중이 돈을 내고 들어오는 공공 콘서트 시리즈를 먼저 성공시키며 새로운 청중을 키워놓고 있었다.
하이든은 이 모든 흐름을 흡수하고 있었다. 30년간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단을 직접 운영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시대의 여러 물줄기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그는 완전한 혁신가라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가장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완성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1790년, 예순의 시골 음악가는 마침내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이라는 용광로
그가 마주한 1790년대의 런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뜨겁고 시끄러운 ’18세기의 뉴욕’이었다. 매일 전 세계의 무역선이 템즈강으로 밀려들고,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뿜어내는 석탄 연기와 마차 바퀴 소리로 가득한 곳. 귀족의 저택이 아닌 대형 콘서트홀에 모인 수백 명의 대중은, 하이든이 평생 상대해 온 귀족 청중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이든은 이 압도적인 복잡함 속에서 주저앉는 대신, 끓어오르는 대도시의 에너지를 포착했다. 이 새로운 청중을 사로잡으려면, 기존의 단아하고 조용한 음악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브로드웨이의 연출가들이 거대한 무대 장치와 사운드를 동원하듯, 하이든은 ‘오케스트라’라는 악기의 체급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그렇게 런던의 소음과 활기를 통째로 갈아 넣어 만든 현대 오케스트라의 시초, 교향곡 104번 ‘런던’이 탄생했다.
오케스트라의 세포분열
오늘날 공연장에서 만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표준 배치, 이른바 ‘2관 편성’의 기본 설계도는 바로 이 곡에서 정립되었다. 하이든이 안내하는 4개 악장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단출했던 시골 악단이 어떻게 대도시를 닮은 거대한 유기체로 진화하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Symphony No. 104 in D Major, Hob. I:104 “London”
Song ∙ Classical ∙ 1999
1악장 : “모두 주목!” 타임스퀘어 같은 투티(Tutti)의 일격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귀를 찌르는 강렬한 울림이 두 번 연속으로 쏟아진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일제히 한목소리로 폭발하는 ‘투티(Tutti, 전체 연주)’다.
당시 런던의 콘서트홀은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었다. 귀족과 부자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소통하던 사교장이었다. 하이든은 연주 시작과 동시에 팀파니와 트럼펫을 동원해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거대한 전광판이 순식간에 시선을 빼앗듯, “자, 이제 잡담은 멈추고 내 음악에 집중하세요!” 라는 선언이었다. 장엄한 서주가 끝나면, 현악 5부(제1·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도시의 세련된 질주를 시작한다.
2악장 : 백댄서에서 주연배우가 된 목관악기
한 템포 가라앉는 느린 2악장(Andante)에서는 플루트, 오보에, 바순 같은 목관악기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곡 이전까지 목관악기들은 현악기의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 부르며 음량을 보태는 ‘백댄서’에 불과했다. 하이든은 런던의 수준 높은 연주자들을 만나 이들에게 비로소 독자적인 대사를 쥐여주었다. 2악장에서 목관악기들은 바이올린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면을 고백하는 뮤지컬 주인공처럼 서로 아름다운 선율을 주고받으며 앙상블을 이룬다. 오케스트라가 단순히 ‘커진 소리’가 아니라 ‘다채로운 색채를 지닌 소리’로 진화한 순간이다.
3악장 : 귀족의 무도회장에서 대중의 광장으로
3박자의 경쾌한 춤곡, 미뉴에트(Menuetto) 악장이다. 본래 미뉴에트는 프랑스 궁정에서 소수의 귀족이 우아하게 스텝을 밟던 폐쇄적인 음악이었다. 하이든은 이를 수백 명의 관객을 위해 박동감 넘치게 개조했다.
악기들의 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가 속삭이듯 작아지는 다이내믹스의 기술이 이 악장에서 극대화된다. 만하임 악단이 처음 불을 붙인 이 기술은 하이든의 손을 거쳐 비로소 대중의 언어가 되었다. 소규모 귀족 파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넓은 공간에 모인 대중의 호흡을 한 손에 쥐는 오케스트라 특유의 쾌감이다.
4악장 : 거대한 엔진이 폭발하다
이 교향곡의 진짜 백미는 마지막 4악장(Finale)이다. 낮 동안 억눌려 있던 뉴욕의 에너지가 밤의 브로드웨이에서 폭발하듯, 하이든은 평생 축적한 오케스트라의 모든 화력을 이 피날레에 쏟아붓는다.
시작은 바닥에서 낮게 웅성거리는 엔진 소리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웅~~~” 하는 묵직한 지속음(Pedal point)을 깔고, 그 위로 바이올린이 런던 길거리를 닮은 활기찬 민요풍 멜로디를 던진다. 마침내 현악·목관·금관·타악기가 완벽하게 맞물리며 오케스트라 완전체의 사운드가 터진다. 쉴 새 없이 교차로를 건너는 군중이 바이올린이라면, 도시를 밝히는 화려한 조명이 금관악기이고, 대도시의 심장 박동이 팀파니다. 어떤 악기도 들러리로 남지 않는 카타르시스가 마지막 음표까지 질주한다.
설계도는 어떻게 세상에 퍼져나갔나
하이든의 설계도는 런던 무대에서 완성되는 순간, 이미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18세기 후반은 악보 인쇄·출판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 시리즈(93~104번)는 당시 가장 잘 팔리는 악보였고, 파리·빈·베를린의 음악가들이 앞다퉈 구입해 연주했다. 하이든의 제자 이그나츠 플레이엘이 파리에서 출판사를 차려 스승의 악보를 유럽 전역에 보급한 것도 이 흐름을 가속했다. 표준화된 편성이 있어야 악보를 사서 바로 연주할 수 있으니, 하이든의 2관 편성은 자연스럽게 업계의 표준이 되었다.
공공 콘서트 문화도 이 설계도에 날개를 달았다. 하이든 이전까지 오케스트라 음악은 귀족의 살롱에서 소수를 위해 연주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런던, 파리, 빈에서 입장권을 팔고 대중이 돈을 내고 들어오는 콘서트홀이 빠르게 생겨났다. 대중을 위한 음악과 대중을 위한 공간이 서로를 키우며 함께 성장했고, 그 중심에 하이든의 설계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설계도를 가장 충실하게 이해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가장 과격하게 부순 사람이었다. 1792년, 스물두 살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빈에 도착해 하이든의 문하에 들어왔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토벤은 누구보다 하이든의 설계도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구조를 완전히 이해해야 그것을 제대로 부술 수 있는 법이다. 10여 년 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Eroica)’을 세상에 내놓는다. 하이든이 정성껏 완성한 설계도를 단숨에 찢어버린, 전혀 새로운 황야의 시작이었다.
“If I can make it there, I’m gonna make it anywhere.”
— Frank Sinatra, <New York, New York>
2019년, 브로드웨이의 객석에 앉아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매일 밤 대규모 공연이 펼쳐지고, 그것을 채우는 무수히 많은 인파들. 낮의 혼란스러움을 단번에 상쇄하는, 이 도시만이 가진 매력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래서 뉴욕에 오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런던’이라는 이름의 이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7년 전 뉴욕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도시의 에너지란 결국 이름도, 시대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어쩌면 230년 전 런던의 어느 콘서트홀에서 하이든이 남긴 이 설계도에서 이미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