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세계를 향한 낯선 경고: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깨우는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메켈레와 파리오케스트라가 일깨워 준 예술의 본질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감각적 마모

우리는 흔히 예술에서 위로와 조화, 그리고 안식을 찾는다. 특히 하이파이(Hi-Fi)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소리의 날카로운 끝을 매끄럽게 다듬고, 대역 간의 갈등을 중재하여 ‘완벽하게 조화로운 상태’를 지향하는 여정과도 같다. 최근 경험한 LA 필하모닉의 스트라빈스키는 전 세계의 관객을 타게팅하는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본고장이니만큼, 누구의 귀에도 거슬리지 않는 대중적 관점에서의 완벽한 작품을 선보였다.

마치 최신 스마트폰의 HDR(High Dynamic Range) 기능이 적용된 사진처럼, 어둠은 인위적으로 밝혀지고 빛은 차분하게 억제된 ‘실패 없는 사운드’.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친절하고 완벽한 균형 앞에서 나는 지독한 권태를 느꼈다. 지각이 자동화되고 감각이 관성에 젖어들 때, 예술은 삶의 배경음악으로 전락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토르 쉬클로프스키가 경고했듯, “익숙함은 사물을 먹어치우고, 옷과 가구, 배우자, 그리고 전쟁에 대한 공포까지도 무디게 만든다.”

The Rite of Spring (Revised Version for Orchestra, Published 1947), Pt. 1 “The Adoration of the Earth”: I. Introduction

클래식 ∙ 2013

‘낯설게 하기’: 예술이 비명을 질러야 하는 이유

예술의 존재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데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1913년 파리에서 일으킨 ‘폭동’은 단순히 소리가 생소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객들이 수 세기 동안 신봉해온 클래식의 ‘미적 문법’을 정면으로 해체하고, 익숙했던 소리의 질서를 낯선 것으로 뒤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대지를 찢고 분출하는 원시적 생명력은 결코 매끈할 수 없다. 불협화음은 고막을 할퀴며 우리의 평온을 방해해야 하고, 변박의 리듬은 뇌의 예측 기동을 마비시켜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감상의 장애물이 아니라, 마비된 감각을 깨우는 날카로운 메스다. 예술은 사물을 익숙한 맥락에서 떼어내어 그것이 가진 본연의 거친 질감을 회복시키는 ‘낯설게 하기’의 과정이어야 한다.

메켈레가 증명한 ‘불온한 명징함’의 미학

클라우스 메켈레와 파리 오케스트라의 녹음은 보정 없는 ‘RAW 파일’과 같은 충격을 선사했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거대한 유기체로 묶어 포장하기보다, 각 악기의 근육과 신경을 수술대 위의 조명 아래 낱낱이 해체하여 전시한다.

고해상도 시스템에서 이 ‘불편한 명징함’은 경이로운 쾌감으로 전이된다. 서로 충돌하는 배음들이 시스템의 분리도를 한계까지 밀어붙일 때, 감상자는 비로소 음악이라는 거대한 실체와 1:1로 대면한다. 그것은 안심(安心)이 아니라 각성(覺醒)이며, 관조가 아니라 체험이다. 메켈레는 익숙한 <봄의 제전>을 다시금 ‘처음 듣는 소리’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100년 전 파리 관객들이 느꼈던 그 생소한 경외감을 재현해낸다.

Le sacre du printemps, Pt. 1 “L’Adoration de la terre”: I. Introduction

클래식 ∙ 2023

결론: 하이파이, 본질적 불편함을 향한 통로

결국 예술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사용하는 ‘익숙한 필터’를 거칠게 걷어내는 행위다. 모든 것이 알고리즘에 의해 최적화되고 데이터화되는 이 매끄러운 시대에, 스트라빈스키는 우리에게 ‘불편해질 권리’를 역설한다.

진정한 하이파이 시스템의 가치는 소리를 감미롭게 윤색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예술가가 숨겨놓은 그 ‘본질적인 불편함’과 ‘낯선 질감’을 가감 없이 전달하여, 우리의 무뎌진 감각에 다시 날을 세우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오늘 나는 매끈하게 보정된 디지털의 안락함을 지우고, 거칠지만 생생한 날 것의 대지를 만났다.

진정한 예술은 우리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자장가가 아니라, 세계를 낯설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기분 좋게 뒤흔들어 깨우는 날카로운 알람이다.


김민식(Kevin)

변호사

김민식 변호사

금융과 부동산 관련 법률을 주로 자문하는 10년차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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